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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검술 거합도에 관한 고찰 - 이강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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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검술 거합도에 관한 고찰 이강업(연수검도관, 검도4단)


1. 서설 몇 년 전 국내 PC통신의 무예동호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일본 거합도에 대한 나믈대로의 생각을 단편적이나마 발표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내용은 거합도의 낱기술 소개와 함께 거합도가 지닌 의미가 지극히 일본적인 것이어서 그 점에 관해서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주력을 했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원숭이 흉내나 내려고 거합도를 하려는 부류에 대한 경종의 일환으로 글을 썻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당시보다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과연 이 거합도를 권장을 해야 좋을지 말아야 좋을지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조차 헷갈림 정도로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해동검도와 많은 검술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대한 검도회를 왜색이라고 몰아 부쳤을 때 때아닌 검도의 국적성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이때 대한검도회가 왜색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주된 내용은 역시 「검도의 본」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더욱 일본적인 성향이 짙은 거합도를 한다는 것은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400여 년 전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 일본의 도검과 검술, 도검을 만드는 기술 등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 따라서 오늘날 검도와 함께 일본의 검술인 거합도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그렇게 주저할 일도 아니고 크게 반대할 일도 아닐지 모른다. 더욱이 21세기에 들어서서 글로벌 시대니 세계화니 하는 추세에 놓여 있는 마당에 "일본 것이다 아니다" 따지기나 하고, "하지 말자" 하는 논쟁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검도에 徨漫??이런 논쟁이 있었고 현대의 스포츠화된 무도를 가지고 국적을 따지면서 하지 말자 하는 주장이 지나치게 국수주의에 얽매인 처사란 주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거합도에 관해서도 이런 논쟁은 비켜 갈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거합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한번쯤 짚어보자는 것이 이 글의 주된 내용이다.   2. 거합도란 무엇인가? 예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동양의 3보(寶)로 조선의 활(弓矢), 중국의 봉(棒術), 일본의 칼(日本刀)을 꼽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곧 우리나라 사람들은 활쏘기에 능했고, 중국인은 봉술에 능했으며, 일본인은 칼을 잘 만들고 잘 썻던 데서 기인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은 칼의 나라답게 오늘날의 검도를 만들어 냈는가 하면, 거합도라는 이름의 진검 사용을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더욱이 전일본검도연맹에서는 「제정거합」을 만들어 그들의 시합에서 시범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과연 거합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의의 있는 일일 것으로 생각한다.   (1)거합도의 형성 지금으로부터 약 4백 수십 년 전 일본의 무사들이 정권을 집권한 무로마치(室町)시대, 하야시자끼 진스케 시게노부(林崎甚助重信)에 의한 하야시자끼 무소류(林崎 夢想流)가 그 기원이다. 2대째 다미야 헤에베 나리마사(田宮平兵衛業正)에 의해 다미야류가 생ㄱㅆ으며, 나리마사는 도꾸가와(德川 ) 쇼군(將軍)가의 이에야스(家康), 히데다다(秀忠), 이에미쓰(家光) 등 3대에 걸쳐 이 발도술을 가르쳤다. 그후 40여류의 분파가 생겼고, 7대째에 하세가와 에이신(長各川 英信)에 의해 독창적인 기술을 가미해 하세가와 에이신류가 생겨났다. 근세에 이르러 현대 거합도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나까야마 하꾸도(中山博道)는 다니무라(各村)류와 시모무라(下村)류를 배웠으며, 오오모리류를 초전(初傳), 에이신(英信)류를 중전(中傳) 또는 오꾸이 아이(奧居合)라 이름지어, 그에 의해 1933년경부터 무소신덴류 발도술(夢想神 流拔刀術)이란 이름으로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2)거합도의 의의와 목적 거합도의 저자 中村泰三郎(나까무라 다이사브로)에 의하면 「거합도란, 불의에 적으로부터의 공격에 대해 즉시 응전하여 적을 제압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호신의 검술」이라고 정의한다. 걷거나,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상관없이 불시에 있을 적의 공격을 예의 주시하고, 적의 동향을 감찰하고 있다가 엄정한 기법으로 순식간에 칼을 뽑아 적을 베고 자신을 보호하는데 거합의 목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居』란, 심체의 일치, 정·동의 일치, 현대(공방)의 일치 등 모든 표리·양면의 기술을 자세히 아는데 있고, 『合』이란, 적으로 부터 불의의 기습에 응해 적의 동향을 찰지 하고, 선수를 써서 적을 제압하는데 있다. 『道』란, 그러한 무도의 길, 수련의 길, 심신 단련의 길을 뜻한다.   (3)거합도는 사무라이의 무사 저신이며, 일본 정신의 근간 일본인들은 거합도의 수련을 통해서 「칼의 정신」을 함게 연마하는 것으로 보인다. 「칼의 정신」은 곧 「사무라이(侍)의 무사 정신」의 계승이요, 이 정신은 곧「일본적인 그들만의 특유한 정신」으로 이어져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중추적이고 기본적인 틀을 이루게 했고, 그것이 그들의 사회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쳐 지극히 「일본적인 특성」을 만들어 냈다. 일한 사전에 의하면 거합의 뜻이 "재빨리 칼을 빼어 적을 베는 검술의 일종"이라고 설명되어 있고, 거합의 기본 용어 - 예컨대, 우께낭아시 - 「상대의 칼이나, 공격을 살짝 피하여 빗나가게 한다는 뜻」, 介錯(가이샤꾸) - 「할복하는 자의 목 치기, 또는 그러한 사람의 뜻」, 追風(오이가제) - 「(끝까지) 쫓아 가서 벤다는 뜻」, 拔討(打) - 「칼을 뺌과 동시에 벤다는 뜻」등등의 용어가 해설되어 있는가 하면 「切(斬)り(기리)」같은 칼과 관련된 단어와 용어가 생활 속에 뿌리 내려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그만큼 일본 검술은 일상생활과도 관련이 있어 왔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은 「거합의 연무」와「칼의 정신의 연마」로 인해 어느 때고 칼을 뽑아 남의 목을 칠 준비를 해 왔으며, 언제 어디서고 자신의 배를 가를(切復; 겟부크)준비를 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패전 후 검도가 금지되었을 때, 거합 역시 경시했다가 그들이 힘이 축적되자 검도를 다시 부활시켰다. 검도와 거합의 칼의 정신은 곧 무사(사무라이)의 정신이고 일본의 정신이기에 결코 버릴 수도 버려져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힘이 약할 때 그들은 잠시 수그리고 있었지만 다시 힘이 생기자 모든 것을 복원한 것이다. 패전 후 그들은 헌법에서도 군대를 갖지 않기로 했지만, 지금은 해외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는 설정인데, 주변 국가들의 항의와 반발과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의 저의 - 그것은 칼과 함께 항상 준비해 온 칼의 정신, 일본 정신이었던 게 아니겠는가.   (4)검도와 거합도와의 관계 中村泰郞(나까무라 다이시브로)에 의하면, 한 때 검도의 애호가들 중에서도 거합이 검도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이유로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구전에 의하면 검도와 거합은 서로간에 반목이 심했는데, 검도하는 사람들은 거합을 하는 사람을 일러 "네가 감히 움직이는 나를 벨 수 있겠는가?"라고 했고, 거합을 하는 사람들은 검도를 하는 사람을 일러 "죽도 - 그 칼로 석은 나무조차 벨 수 있겠느냐?"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반목의 연유는 아마도 추측컨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에 기인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중국과 일본 등에서 한때 전쟁기술로 각광을 받았던 무술이 총·포 등의 화약무기의 발달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러나 무술은 살아남기 위해서 변화를 꾀하게 된다. 중국에서는 기공·양생술과 결합하였고, 일본의 경우는 예능화한 것이 그것이다. 일본의 무술이 예능화된 사례는 거합도에서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데, 거합도는 실전성을 논하기에 앞서 예법이 복잡하고 형식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이는 무술의 형식이라기 보다는 연극의 형식이었다. 실전적이고 살벌했던 센고쿠(전국)새대의 검법은 에도(강호)시대에 들어서서 평화기가 도래하자 『화법검법』으로 부를 정도로 화려하고 형식에 치우치는 검술로 변해갔다. 그러다가 애도(강호)시대 중기에 이르러 이런 『화법검법』에 반기를 드는 개역파가 나오게 되는데, 직심영류의 나가누마시로 오자에몬(長沼四郎左衛門)과 일도류의 나카니시 츄우죠오(中西忠藏)가 방호구와 죽도를 고안해 오늘날의 검도의 원형이 되는 새로운 검술을 만들게 되었고 이것이 일본에 너릴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다라서 이 시기에는 거합과 검도가 서로 비난하고 반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많은 각종 유파의 거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일본검도연맹에서도 별도로 거합을 제정(제정거합)하여 시범을 보이고 있는데, 확실히 천하 제일이라고 자랑하는 그들의 명검인 일본도는 거합의 연무와 베기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고 볼수 있다. 엄정한 예식을 중시하며, 깨끗하고 단아한 일본 특유의 복장을 하고, 도(道)를 닦는 듯한 엄숙한 표정과 절도 있고 품위 있는 긴장감 넘치는 동작의 연무 - 이는 죽도경기의 검도에서는 맛볼 수 없는 부분이기하다. 그래서일까 이제 와서 검도와 거합은 「수레의 양 바퀴」라며 검도와 거합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5)거합도의 예술성 일본인들은 거합의 연무를「예술」이라고 한다. 허기야 일본도를 미국의 점령군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예술도로 분류해 결국에는 칼을 들고 연무하는 거합을 예술이라고 부를 만도 했을 것이다. 사실 거합의 연무하는 외형상의 모습만 가지고 본다면 그러한 말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거합이 예능화가 되어 실전보다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연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발달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거함의「내용」을 알고 본다면 과연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점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영신류나 대삼류의 거합술에 "介錯-가이샤꾸"라는 기법이 있다. 앞에서도 설명을 한 바 있지만 이 동작은 "할복하는 자의 목을 치는 동작"을 뜻한다. "追風-오이가제"는 "끝가지 적을 따라가 베고 자르는 동작"이다. 그 외에도 복부를 찔러 "창자가 꿰져 나오도록 가르는 동작, 칼에 묻은 피를 터는 "血振り-지부리"등의 행위가 있는데 과연 이를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나라의 본국검도, 중국의 도검술에도 서양의 펜싱에도 베고, 치고, 지르고, 자르는 동작이 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칼에 묻은 피를 털고, 창자가 꿰져 나오도록 복부를 찢고, 항복하는 자의 목을 자르는 기술의 연습이나 형(품새)의 연무는 하지 않는다. 이는 일본인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본인만의 특성이며, 거합은 그만큼 호전적이고, 잔혹하고, 냉혹한 소름끼치는 살생적 도검술의 예능적인 표현인것이다. 그래서 일까, 그 어느 민족에게서도 볼 수 없던, 사람의 목을 배추 밑동 자르듯 쉽게 자르고, 자기의 배를 석은 무우 자르듯 쉽게 갈라 버리는 일본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거합을 통하여 익혀온 자연스런 몸짓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6)거합도는 일종의 형(型)이다. 형이라 함은 실전적 경험이나, 있을 수 있는 전투(싸움) 상황을 가상하여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엮어 일정한 연무선에 따라 혼자 연습하도록 되어 있는 기술 연마의 한 방법이다. 예를 들면, 상대가 손목을 칠 경우 밑으로 살짝 내려 빗나가게 하고 상대의 손목을 되받아 칠경우를 상상하여 혼자 연습을 한다고 할 때 우리는 그 한 개의 동작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낱기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손목을 쳐 올 때는 이렇게 하고, 머리를 쳐 올 때는 이렇게, 찔러 올 때는 이렇게 한다는 내용을 설정(또는 가상)하여 앞으로, 뒤로 옆으로 수십 가지를 조합하여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은 곧 형이 된다. 따라서 형은 하나의 시나리오이고 교육체계인 것이다. 그런즉 거합도를 통해서 우리가 익힐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①공방의 자세를 바르게 한다 ②칼질을 올바르게 유도한다. ③기위를 고조시킨다. ④기초적인 운동 능력을 배양한다. ⑤호흡과 동작의 일치(기검체)를 이룬다. ⑥예절 바른 인격과 단정한 자세를 함양한다. ⑦단전호흡을 통한 정신력의 집중과, 심폐기능을 향상시킨다. ⑧지검 사용으로 기세의 충만한 묘미를 터득한다. ⑨칼의 오ㅛㅇㅇ으로 인한 해악과, 선용으로 인한 미덕을 깨닫게 한다. ⑩올바른 부사도를 함양한다. 이렇다면 거합도의 수련은 검도의 보조적인 수단 이외에도 그 자체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7)거합도는 기의 단련을 꾀한다. 검술은 예날부터 거의 운용을 중시 해왔다. 특히 거합도의 경우는 진검을 다루면서 한편으로 "살생의 요소"를 제거하고 보니, 검술의 기법이 외향적으로는 연극적인 요소로, 내향적으로는 거의 단련으로 발전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이 점은 마치 중국 무술의 내가 권법(태극권, 형의권, 팔괘장 등)이 살생적 무술에서 출발하나, 근대에 들어와서 살생적 요소가 퇴색해 짐이 따라 차츰 내공 수련에 중점을 두며 발달한 경향과 유사하다고 볼수 있다. 따라서 외향적으로 발달한 검도의 대련(시합, 경기기법)과 내향적으로 발달한 거합도의 조화로운 연마는 명실공히 검술의 완성을 추구하는 무도인의 꿈이요 길이다. 그러므로 현대 죽도경기로 알려진 검도가 경기위주의 기술로 발전함에 따라 차츰 기(氣) 선(禪_에 의한 단련이 소홀해 졌다면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거합도를 통해 부족하거나 모자라는 점을 보완하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큰 것일 수 있을 거이다.   3. 결어 일본이나 우리 나라나 같은 검도를 하면서 일본의 경우 거합도를 연마하는 것과, 우리나라의 경우 거합도를 하지 않는 것과는 정신적, 심리적, 체력적, 기술적 차이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일본의 경우, 검도 외에도 "거합의 수련"은 실익이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일본검도연맹이 한때 경시했던 거합도에 눈을 돌릴리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죽도와 칼의 쓰임은 실제로 크게 다르다. 죽도가 칼에 근거한 것이기는 하여도 스포츠성이 강한 시합용이기 때문에 진검의 사용처럼 될 수가 없다. 반대로 진검은 살상용이므로 죽도처럼 가볍게 사용할 수도 없다. 이렇듯 상반된 분양의 장단점을 서로 보완한다는 것은 크게 가치 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거합이란 형의 연무에서 얻어지는 정신적, 육체적 효과 또는 그리 가볍지 않다. 일본은 이렇듯 수레의 양바퀴 같은 검술·검도를 수련하는 것에 반해, 우리 한국은 거합을 뺀 "수레의 외바퀴"같은 인상을 주는 검도를 하고 있다면 뭔가 우린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거합도를 무조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한다는 것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이유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첫재 거합도는 검도와는 달리 너무나도 「일본적인」검술이기 때문이며 우리와는 정서적으로나 민족적, 향토적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 주변에는 왜색의 저급 문화가 판을 치고 있고, 남녀 노소 너나할것 없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심취되어 무의식, 무비판속에 그들을 흉내 냄으로서 우리의 민족 정기와 우리 고유의 문화를 좀 먹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그 위에 더하여 한국의 검도인들 마저 지극히 일본적인 검술인 거합도를 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셋째 우리는 예로부터 일본보다 우수한 문명과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조선시대 때 일본의 칼 제작법과 검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었던 적은 있었지만, 검술과 검을 만드는 기법, 무술 등을 우리의 조상들이 일본에 전수해 주었던 것이고, 무예도보통지에 보면 우리의 검술도 없는게 아니며, 후세에 일본 검합도에 영향을 준 검술도 있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자기의 전통적인 것을 내세울만한 문화와 문명이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싱리다. 그저 외국의 문화와 문물을 들여다가 좋은 것을 취하고 베껴서 자기화 하여 일본적인 특성의 것을 만드는데는 재주가 뛰어났었다. 21세기를 맞이하여 세계화 되는 시점에 일본은 자기의 특징적인 문화를 내 놓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런 마당에 과연 구식의 낡은, 지극히 일본적인 정신이 베어 있는 거합도가 우리의 정서와검도 기술 향상에 얼마 만한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 깊은 자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라서 기와에 진검에 의한 검리의 습드과 기(氣)의 단련 등의 관심으로 수련을 해야 한다면 일본 거합도의 직수입도바는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도니 조선검법들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검술형의 재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검도의 본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있고 어차피 새로운 「검도의 본」이 필요하다고 느꼈으면 한 시 바삐 새로운 형태의 한국형 「검도의 본」과 함게 일본 거합도에 갈음할 새로운 검술형의 제정도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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