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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태우는 검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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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8. (10개 대학 교수들이 보는 劍道에 대한 시각) 다시 불태우는 검혼 김헌무(대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검도4단)


따가운 가을 햇살 속에 은빛 물결치는 문천지가 남으로 자리하고 낙엽지는 능선따라 굽이굽이 흐르는 금호강이 북으로 휘어감고, 우거진 숲을 지나 저 멀리 영천을 동으로 두고, 저녁 노을 붉게 물드는 서쪽으로 아름다운 팔공산을 바라보면서 진량벌에 우뚝 서 있는 대구대학교, 이곳에서 나는 오랫동안 잠자던 나의 검혼을 다시 찾게 되었다. '손목, 머리, 허리-', 날카롭고 우렁찬 기합소리에 매료되어 검을 잡은 것이 어언 30여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단조로운 반복연습에 싫증이 나고, 위력적인 호신술이 보이지 않는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으로 그만두려고 한 것이 한두 번 아니었으나, 사범님과 선배님들의 격려와 검의 위력에 이끌리어 지금도 검도인으로 남아 있는 것을 한 점의 후회도 없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하여 온 것 중에서 가장 열심히 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언제나 망설이지 않고 검도라고 대답한다. 이는 내가 검도를 남보다 잘하기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검도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여서도 아니다. 단지 내가 검도에 쏟아온 땀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검도를 처음 시작한 것은 경남고등학교에 입학한 1961년 3월이다. 호기심 많은 신입생으로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던 마음에 친구와 함게 조심스럽게 검도부에 가입한 것이 그 긴 인연의 시작이었으며, 이로 인해 각종의 검도대회에 출전하고 검도부 주장까지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지 태권도나 유도 등과 같은 호신술로 생각하였지만 사범님과 선배님들의 엄격한 지도를 받고 그들의 해동을 보았을 때, 이것이야말로 학생으로서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진정한 무도라고 생각하게 되엇다. 당시만 해도 운동부에 가입하면 이는 강패의 시작으로 보였던 시절이라 검도부 선배들은 모두 모범생이어서 신기하기도 하였고, 그리고 엄한 규율과 훈련은 오히려 나를 사로잡은 것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내가 검도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된 것은 선배들의 훈련후 홀로 남아 도청내의 그 넓은 검도도장(지금은 부산지방검찰 청사로 사용하고 있음)을 혼자 청소하고 낡은 장비를 하나하나 손수 수리하면서 뼈아프게 배웠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 당시 학교의 검도도장은 교실 하나정도의 크기였는데 이마저도 유도부, 펜싱부와 함게 사용하여야만 하였다. 그리하여 운동장에서 연습하는 경우가 허다하였고 시합에 임박하여서는 경찰과 대학선수들이 연습하는 경남도청의 상무관으로 내려가서 가르침을 받고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나는 20여명의 1학년생 중 유일하게 선수로서 선발되어 늘 선배들과 함께 연습하게 되는 영광을 얻었지만, 연습을 마친 후 도장의 청소와 정리는 언제나 나의 몫이 되었다. 상무관 검도도장은 전국적으로 자랑하던 도장이었지만, 그 넓은 도장마루를 나 혼자 빗자루로 쓸고 물걸레로 닦는 데에만도 족히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이렇게 청소하기를 한 달 이상이 넘었는데, 처음에는 선배들이 야속하기도 하였지만 이일을 혼자서 해내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마음이 뿌듯하고 또한 검도라는 것은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배우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당시 학교의 검도예산은 물론, 호구 등 검도장비는 낡을 대로 낡고 너무 부족하여 연습을 하고 나면 주먹이 시퍼렇게 멍들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아무리 죽도를 다듬고 기름을 칠하여도 한두 번 사용하고나면 깨져버려 질좋은 죽도 하나를 갖는 것이 바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호구가 낡고 부족하여 고물상을 뒤지기도 하고 멀리 대구형무소까지 찾아가기도 하였으며, 이를 끌어모아 수리하다 바늘에 찔린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저다 어머님이 보시면 뭐 대단한 일 한다고 그러느냐고 하시면서도 아타까운 마음으로 구두수선집에 맡겨 주시기도 하였지만, 그도 너무 비싸 우리들 손으로 직접 수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 호구가 부족하여 선배들이나 동료들이 먼저 사용한 호구를 바로 받아 얼굴에 쓸 때는 그들의 지독한 땀냄새를 꾸 참고 마셔야만 하였다. 이렇게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연습한 결과 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올리고 보니 검도에 대한 애책은 더욱 깊어만 갔던 것이다. 특히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1961년에 서울에서 개최된 8.15 경축대회이다. 당시 나는 유일한 1학년 선수로서 5인조 시합에서 중견을 맡았다. 어찌보면 주장 다음으로 책임이 무거운 자리였다. 결승전에서 우리 팀의 선봉은 이겼지만 , 2위가 졌던 관계로 나의 책임은 무척 무거웠고 더욱 나의 상대는 나보다 키가 훨씬 커서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사범님과 선배들의 격력를 받으면서 당차게 임전하여 두 번의 손목으로 상대방을 무너뜨렷다. 그 결과 우리 팀의 3대 2로 우승하게 되어 나는 많은 귀여움을 받게 되었다. 아직도 놀라운 것은 서로 겨루어 일합 이합을 하는 중에는 그렇게 커보였던 상대방이 일순간 그 큰 몸집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손목만이 눈에 들어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손목'하고 기합을 크게 넣고 전진한 일이다. 왜 그 큰 몸체는 보이지 않고 손목만 보였을까. 그후 지금가지 나는 이러한 경험을 맛본 기억이 업사. 이렇게 나의 땀과 정성이 배어 있는 검도를 어지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검도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검을 통한 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였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검도를 시작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지만 그 당시 마음 한구석은 늘 어두웠다. 다름 아니라 당신의 검도 사범님들이나 졸업한 선배님들의 생활이 너무 궁핍하게 보여 혹 검도를 계속하면 나도 먼 훗날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지금은 물론 검도가 널리 보급되고, 또한 직업의 선택도 다양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러하지 못하다 보니 어느 정도 연세가 드신 사범님들께서는 사범이라는 것이 하나의 직업으로 생활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학교 재정도 넉넉하지 모하여 비인기종목인 검도사법에게 정기적인 봉급을 지급할 만한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일제의 잔재로 비난받기도 하는 검도를 후원하고자 하는 자도 찾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범님들의 생활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이를 바라보는 어린 우리들은 한편 미안하고 한편 가슴아프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검도를 배우게 된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검도는 직업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결코 저런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검도연습 후에는 더욱 학업에 열중하여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진학 후 어쩌다 시합이 있으면 출전하기도 하였지만, 1980년 4단을 취득한 이후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검도와는 거리를 두고 지내왔다. 그러나 나는 다행스럽게도 대구대학교의 강단에 서게 되면서부터 오랫동안 잠자던 나의 검혼을 다시 찾게 되었다. 대구대학교는 자타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전국적으로 검도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대학이다. 본교에는 1981년부터 검도특기생을 선발하여 전국을 재패하고 있는 검도선수단과 1988년부터 학생 동아리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화랑검우회, 그리고 1996년 5월에 교직원의 심신단련과 친목을 목적으로 교직원 검도회가 구성되어 방과후에는 격무를 더나 구슬땀을 흘리면서 모범적인 검도인으로서 수련하고 있다. 더욱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1997년도에는 검도 전용도장이 마련될 예정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크다. 이와 같이 좋은 여건 속에서 나는 교직원 검도회의 회장직과 화랑검우회의 지도교수를 맡게 되어 한편 책임이 무겁지만, 다른 한편 으로는 나의 잠자던 검혼을 다시 불태울수 있는 계기가 되어 더없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검도를 사랑하는 검도인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힘으로 된 것은 결코 아니고 사범님, 선배님들의 격려와 후배들의 성원 덕분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특히 내가 언제나 검도인임을 잊지 않게 격려하여 주신 대한검도회 이종림 전무 이사님과 대구대학교 검도사범인 남병엄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끝으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저희들에게 자상하게 검도를 가르쳐 주시다가 타계하신 사점님의 명복을 빌고 아울러, 최근 널리 보급되고 있는 검도가 검도의 본질을 망각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의 검혼을 다시 한번 불태우고자 굳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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