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 자료실
검도컬럼

검도 이야기

관리자
0 3808

검도 이야기 (1999년 가을호) 이종림 (대한검도회 전무이사, 검도8단)


이야기 1 - 검도의 유래는?

검도에 관한한 일본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적어도 검도만은 그들 고유의 것이고 자연 발생적으로 자기네들의 역사속에서 생성된 것이며 일본 정신문화에 꽃이라고 스스로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동양삼국의 역사를 보면 현 일본의 검기(검기)나 검술(검술)은 한국에서 2천여년 전에 전해 진 것으로 그들 검도의 역사는 훨씬 후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대검도에 이르기까지 발전시킨 그들의 공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의 검도는 삼국의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요구에 따라 어차피 변화되고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고래의 문헌속에서 중국적인 것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검도'란 용어를 일본에서 사용한 것은 백년이 조금 넘는다. 경기화된 초기에는 '격검'이라고 했는데 한국과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벌써 일천구백여년전 후한(후한)시대 장인(장인)이 쓴 한서예문지 병서부에 검도삼십팔편이라 하여 검도란 말이 나오며 그 법은 없어져 전하지 못하나 "孫吳傳云非信廉仁勇 不能傳兵論劍 (손오전에 이르기를 신의, 염치, 어짐, 용기를 갖추지 않으면 병법을 전하고 검을 논할 수 없다)"이라 하여 그때부터 검도의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더 놀라운 기록은 장자의 설검(設劍)편에 나온다. 이 설검편이 장자 자신의 기록인 지 아니면 후대 사람의 첨부인지는 알수 없지만 연대로 보아 적어도 2천년 전에서 2천 3백년 전의 기록이라고 보면 실로 놀라운 것이다. 여기에 보면 조나라 문왕이 칼싸움을 좋아해서 늘 검객 3천여명을 병서에 두고 칼 싸움을 시켜 이를 즐겨했다는 것이다. 이를 근심한 태자 '회'가 장자를 청해 문왕을 설득해 칼싸움하는 것을 말리게 했다는 것인데 이 내용에서 첫째 장자가 검술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것을, 둘째 검술은 개개인의 칼싸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정신적인 면이 우선한다는 것, 셋째는 현재 우리?사용하는 도검의 명칭이 당시에 벌써 쓰여지고 있었다는 것 등이다. 물론 한자자체가 뜻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봉(鋒, 도검의 날끝), 악(鍔, 칼날) 등의 글자들은 일본도의 명칭에 그대로 쓰여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나 중국의 근대 도검 명칭에는 이런 내용이 없어 졌으니 실로 딱한 일이다.


이야기 2 - 김유신은 몇 단쯤 될까? 김유신장군은 현대검도로 치면 몇 단쯤 될까? 이런 추측은 전연 불가능할까 하는 것은 후일로 미루자. 그분은 벌써 천사백년전의 사람이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은 확실하다. 지금 세계 어느 나라의 검도 고단자라도 말의 목을 베어 넘길 사람이 있을까? 더구나 직도(直刀, 당시에 사용하던 칼은 환두대도라는 직도로 휘어짐이 없는 곧은 칼이다)로 말이다. 모르긴 해도 아무도 없다. 말목의 굵기는 사람 목의 3배는 될 것이다. 이것은 무슨 소리인가.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김유신이 소시에 기생 천관의 집 앞에서 자신이 술에 취한 사이 타고 온 말이 버릇으로 천관의 집으로 유신을 싣고 가자 어머니의 교훈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서 말의 목을 베었다는 기록이 의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검술은 놀라운 것이다. 오직 베는 것만으로 단수를 메긴다면 가히 최고단자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검도는 세상없는 자라도 만45세 전에는 8단을 따는 것도 불가능하다. 연한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김유신장군에 대한 다른 일화들도 살펴보자. 삼국유사에 보면 수검득술위국선 (修劍得術爲國仙)이라 했다. 공의 나이 18세(서기 612년)때다. 이 기록에 처음으로 검술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책을 쓴 일연은 선도에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삼국사기에 보면 공이 17세에 중악(中嶽)에 들어가 석굴에서 기도를 드린지 4일만에 도인을 만나 방술의 비결을 받았다 한다. 방술은 곧 검술 등을 격하시켜 놓은 글인듯 하고 이후 많은 글에서 방술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다음해 진평왕 29년에 인부산(咽溥山)에 보검을 가지고 들어가 하늘에 맹세하고 기도하니 하늘에서 영광이 내려 보검에 실리고 3일째 되는 밤에 호성(虛星)과 각성(角星)의 별빛이 빛나며 칼에 내려 드리우니 보검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했으며 또 여지승람 경주 '산천'조에 보면 김유신이 인부산에 들어가 하늘에 고유(告由)하고 병법(일본선검법을 병법이라 한다)을 기도했다. 또 단석산(일명 일출산)에서 김유신은 신검을 얻어가지고 큰 석굴속에 들어가 검술을 수련하느라 칼로 돌을 베어 산같이 쌓였는데 지금도 그 돌들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야기 3 - 승리의 비결은 자제 뿐! 검도경기에서 승패는 그야말로 일순간에 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나 경기에 임하면 서두르는 선수가 많다. 그러나 서두른다는 것은 검도경기에서는 가장 금기로 여긴다. 경기시간이 비록 5분이며 찰나에 승과 패가 결정난다해도 절대 서두르지 말 것이며 1초 1초를 자제할 줄 알아야 경기에 이긴다. 상대가 아무리 약한 자라 해도 기회가 올 때까지 지긋이 기다리며 한 순간을 위해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일단 기회를 잡았을 때는 고양이가 쥐를 덮치듯 과감해야 하고 반대로 궁지에 몰린 쪽에서 반격해 오더라도 조금도 동요치 말고 연타로 승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5분이란 시간은 짧은듯 하지만 한판의 승부를 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인 것이다. 간혹 경기중 한판을 먼저 잃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수록 침착해야만 역전승을 할 수 있다. 시합때 대개 먼저 한판을 딴 자는 방심하거나 그 한판으로 승리를 얻으려고 소극적이며 피해다니는 수법을 쓰는데 이럴때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공격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면서 자제하고 기다리는 마음, 이것이 바로 검도의 묘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소극적인 상대를 기로 누르며 공격의 거리를 포착하려 할 때, 다시 말해서 빼는 상대를 따라 들어갈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첫째는 상대가 물러난 후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쪽에서 밀기 때문에 물러나게 한다는 생각으로 밀고갈 것이며 더이상 밀려날 수가 없어 다시 앞으로 나오거나 혹은 옆으로 피할 때까지는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협을 느끼고 어떻게 할 지 몰라 당황할 때까지는 공격하지 않는게 좋다. 한편 상대가 이판사판이니 공격이나 하자고 과감히 뛰어나올때는 일단 그 예봉을 피하고 반박자쯤 늦추어서 재차 공격하라. 이점이 매우 중요하다. 절대로 그냥 물러나는 상대를 거리도 맞지않고 기회도 없는데 도망가는 줄로만 알고 공격하다가는 이쪽이 반드시 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몰 때는 직선으로 모는 것 보다는 약간 왼쪽으로 상대를 민다는 기분으로 칼끝을 가볍게 눌러 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0 Comments
제목
TOP